기독교복음선교회를 포함한 특정 종교나 공동체를 둘러싸고 항상 등장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엘리트가 왜 그곳에 들어갔을까?”, “똑똑한 명문대생이 왜 거기 걸려들었을까?”입니다.
이 같은 질문은 언뜻 합리적인 의문처럼 보이지만, 여러 잘못된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질문의 답 역시 편협된 방향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학력만이 개인의 선택을 결정하진 않는다
앞선 질문은 ‘학력이 높고 지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저 종교단체에는 가지 않을거야.’란 가정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학력은 정보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할 뿐, 삶의 의미나 가치, 신념까지 규정하는 기준은 아닙니다. 실제로 개인의 선택에는 경험, 가치관, 인간관계, 그리고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특정 종교 단체에 대한 참여를 두고 “똑똑한 사람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다양한 요인으로 이루어진 개인의 판단을 하나의 원인으로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입니다.
주류 종교엔 OK, 비주류 종교엔 NO? ‘이중 잣대’
흥미로운 점은 동일한 현상도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는 점입니다. 기업에서 명문대 출신 인재가 많으면 ‘경쟁력’으로 평가됩니다. 대형 종교 공동체에서도 엘리트, 고학력자 교인들의 존재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식되고 있죠.
그러나 특정 비주류 종교단체에 소속된 엘리트, 고학력자에 대해서만 “걸려들었다”는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중 잣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사실 자체보다도 사회적 인식과 프레이밍의 영향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종교, 공동체에 엘리트와 고학력자가 비슷한 비율로 존재할 수 있음에도 비주류 종교의 사례만 부각되는 것, 이를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이라고 합니다.
또한 일부 언론 매체에서 본 선교회를 두고 ‘엘리트’와 ‘명문대생’이라는 표현을 강조하는 것은 사건의 이례성과 주목도를 높이기 위한 보도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엘리트와 명문대 출신이 일반적으로 합리적이고 판단력 있는 집단으로 인식되는 가운데, 이들이 특정 종교 단체에 깊이 관여했다는 측면을 강조하면 사건의 충격도를 확대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결국 이는 사실의 전부가 아님에도, 특정 요소를 부각해 한 단체를 바라보는 인식을 굳혀버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참여 = 피해’로 보는 시선의 문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특정 비주류 종교 단체에 참여한 사실 자체를 곧바로 ‘피해’,‘ 속음’으로 해석하는 시선입니다. 이는 개인의 경험과 판단 능력을 전면 부정하는 오류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공동체에 참여하는 이유는 단일하지 않습니다. 신앙적 확신, 가치에 대한 공감, 공동체 경험,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배제한 채 ‘피해’로 규정하는 것은 현상을 편협된 방향으로 해석하게 합니다.
결국 “엘리트가 왜 특정 종교단체에 들어갔을까?”라는 질문은, 해당 종교단체의 본질을 설명하기보다 종교단체를 바라보는 인식관을 굳히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종교단체 내 고학력자, 엘리트의 존재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은 왜 선교회를 택했나?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참여했는가”보다 “어떤 과정과 맥락 속에서 그 선택이 이루어졌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이 질문은 특정 집단에 대한 단순한 낙인이나 옹호를 넘어서, 개인의 선택과 사회적 환경을 함께 이해하는 보다 균형 잡힌 접근을 가능하게 합니다.
고학력·고성취자들은 끊임없는 성과 압박과 완벽주의 속에서 “이만큼 이뤘는데 왜 여전히 공허한가?”라는 실존적 질문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공백은 성취가 높을수록 더 예리하게 느껴집니다. 학문적 성취가 삶의 의미나 방향을 모두 채워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영원한 나라 천국에 대한 소망과 함께 삶의 깊은 의미과 실천적 방향을 제시하는 신앙 공동체는 강한 끌림이 됩니다. 성취 지향적 삶이 만들어내는 내면의 공백이 더 진지한 신앙 탐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유혜진 (30대, Y대 출신 PR담당자) “노력 끝에 목표하던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교수님들과 선배들, 각종 대외 활동, 여행으로도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불만으로 가득찬 매일이 지나갔던 것 같아요. 비로소 그것이 채워진 순간은 바로 온전한 진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을 때였죠.
김미하 (50대, 사업가) “교직을 퇴직하고 꿈을 좇아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기대만큼 이루어지지 않아 허망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태에서의 10개월이 인생 100년을 위한 것이듯, 인생 100년이 영원한 영을 위해 존재한다’는 정명석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난 날 하나님과 나의 영에 대해 무지하여 행하지 못했던 것을 남은 인생 동안 반드시 실천하자고 다짐했지요”
선교회에 처음 발을 들이는 계기는 교리의 강요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는 성경 해석과 거기에 기초한 영원한 세계와 삶의 문제를 관통하는 설교 ,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살아내는 사람들의 모습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지적 탐구 성향이 강한 엘리트들에게는 “비논리적으로 느껴졌던 성경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이치에 맞게 명쾌하게 설명한다”는 경험 자체가 선교회에 입문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속았다’거나 ‘판단력이 흐려졌다’는 단순한 해석은, 이처럼 개인이 지적으로 충분히 납득하고 자발적으로 관여하게 되는 과정을 간과한 것입니다.
이선호 (30대, S대 출신 회계사) “선교회의 말씀은 그동안 비논리적이라 여겼던 성경 말씀을 이치에 맞게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었습니다. 속 시원한 해석뿐 아니라, 말씀을 전해주신 정명석 목사님의 삶과 이를 실천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 진정성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올 수 없다고 느껴질 만큼 변함없는 깊이 있는 말씀에 놀랐고, 조금씩 하나님을 생활 속에 모시고 살아가기 시작하는 제 모습을 통해 선교회의 말씀의 가치를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됐습니다.
정명석 목사님의 삶에 담긴 정신을 배우면서, ‘이 정신을 따른다면 내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정신이 얼마나 위대한지는 직접 실천해 본 사람만이 체감할 수 있습니다.”
의문을 파헤친 명쾌한 성경 해석과 실체적 신앙 체험
기성 기독교 신앙을 이미 해왔지만 그 안에서 해소되지 않는 의문, 두려움, 혹은 깊은 갈증을 품어온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선교회의 말씀은 단순한 종교적 대안이 아니라, “이 시대에 직접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살아있는 체험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이 육 부활, 육 재림한다는 등의 문자 신앙이 아닌 기성 교회가 제시하지 않는 성경의 의문을 파헤친 명쾌한 해석과 실체적 신앙 체험은, 종교적으로 이미 진지하게 탐구해온 사람일수록 더욱 강렬하게 와닿습니다. 특히 지식과 경험이 쌓인 엘리트들은 “이것이 진짜인가”를 스스로 검증하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직접 체험을 통해 확신에 이른 후에는 더욱 견고한 신앙을 갖게 됩니다.
박정철 (50대, 사업가) “대학 1학년 시절, 예수님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던 중에 선교회의 말씀을 접했습니다. 이후 성경을 다시 읽으며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심정과 뜻을 깨닫게 됐지만, 기성 기독교 교회에 비해 아직 미약한 새 역사에 가슴이 먹먹했었죠. 하나님을 향한 애절한 마음과 정명석 목사님을 향한 마음이 20대 시절 선교 사역에 매진하는 원동력이 됐고, 지금까지 선교회에 존재할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지원 (40대, 정신건강간호사) “저는 모태 기독교인으로 종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선교회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풀었고, 지금 이 시대에도 하나님이 사명자 통해 말씀하고 계심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체험신앙’이라고 합니다. 저는 정명석 목사님의 삶과 말씀을 통해 성삼위의 사랑을 실체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버지를 전도하지 못한 아픔 속에서 드렸던 기도가 응답받은 경험은 더욱 신앙을 굳건하게 했습니다. 20년 넘게 정신건강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상담하면서 제가 가고 있는 이 길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섭리 역사임을 더욱 체감하고 있습니다.“
* 본 아티클에 등장하는 교인의 이름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표기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