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선교회 역사의 초석을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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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석 목사 말씀에 모여든 청년들…열정과 헌신으로 교회 기틀 마련
“‘벤츠 뒷자석이 내려앉을 만큼 태웠죠’…4인의 지도자가 기억하는 그 시절”

기독교복음선교회의 초석이 다져지던 1980년대 초반은 사회 전반에 진리를 향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당시 정 목사가 전한 새로운 차원의 말씀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말씀을 듣기 위해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교인 수가 급격히 늘면서 매년 성전을 이전해야 할 정도였다는 것이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이다.

1980년대 선교회에 몸담았던 교인들은 그 시절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청춘을 바쳐 함께 교회를 세워나간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1980년대 선교회를 만나 선교회의 초창기를 함께 일군 4인의 지도자에게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었다.

Q. 선교회 초창기는 대학생들이 중심이 된 젊은 신앙 공동체였습니다. 당시 교인들은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 어떤 헌신을 했습니까?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정연화 목사
제가 목회했을 때는 선교회 초창기로 전도가 매우 잘됐습니다. 그래서 매년 성전을 이전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성전을 구하면 바로 교인들로 가득 찼고, 이사하면 다음 해에 또 꽉 차곤 했습니다.

당시 교인 대부분이 대학생이라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분업 형태로 수제 카드도 만들어 팔고, 일일찻집도 운영했습니다. 지금도 당시 함께 일했던 분들을 만나면 그때 이야기를 하며 웃곤 합니다.

백충경 목사
저는 교회를 돕기 위해 그림 달력을 판매해 본 적이 있고, 다른 학생들도 땅콩을 팔거나 카드 제작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여기 계신 목사님들도 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선교회 비방 방송에 출연한 한 탈퇴자는 이를 길거리에서 돈을 구걸하는 ‘앵벌이’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활동은 제작비나 인건비가 들어간 정상적인 제작·판매 활동이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교회를 돕기 위한 자발적인 참여였습니다.

당시 교인 대부분이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각 교회를 돕기 위해 스스로 참여한 것입니다.

정라미 목사
당시 선교회 소속 많은 교회가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학생들이 불우이웃 돕기나 봉사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이상세계를 만들어야 하니 우리도 뭔가 해보자”는 취지에서 학생들끼리 자연스럽게 의견이 모였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교회 학생들을 돕기 위해 고아원에도 1년에 두세 차례 방문하곤 했습니다.

1980년대 선교회의 초창기 모습을 증언하는 백충경 목사와 박천권 목사
1980년대 선교회의 초창기 모습을 증언하는 백충경 목사(좌)와 박천권 목사(우)

Q. 당시 정명석 목사의 평소 생활은 어떠했습니까?

박천권 목사
정명석 목사님은 1978년 아무것도 없이 서울에 올라오셔서 처음에는 매우 가난하게 생활하셨습니다. 돈이 없어 굶는 일이 많았고, 라면이 있으면 3~4명이 나눠 드시면서 1명, 2명 전도하며 지금의 선교회를 일궈오신 것입니다.

초창기 삼선교 시절에는 물세를 아끼기 위해 수도를 조금만 틀어 물이 쫄쫄쫄 떨어지는 수준으로 사용하셨을 정도였습니다. 본인의 삶도 그러했지만 우리에게도 평소 절약하는 삶을 강조하며 교육하셨습니다.

정연화 목사
교회가 형성되기 시작한 1980년대 초반에는 지금 생각하는 교회의 형태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지하실 창고여서 문을 닫으면 사방이 어두웠고, 장의자를 살 여유가 없어 교인들이 각자 집에서 의자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다들 집에 돌아가면 본당에 온갖 다양한 의자가 놓여 있는 것을 보시고 정명석 목사님이 “이거 봐라, 개성체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도 있습니다(웃음).

한번은 목사님이 나무 합판으로 직접 단상을 만드시는 모습을 본 적도 있습니다. 제가 “예수님에게 배우셔서인지 목수 일도 잘하시네요”라고 말씀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렸을 때라 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웃음).

정명석 목사님은 이런 환경에서도 하루 종일 말씀 강의를 하셨습니다.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대학생들이 진리를 갈구하며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었고, 강의로 인해 건강이 나빠져 폐병에 걸리기도 하셨습니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저도 처음 뵀을 때 누가 식사를 챙겨드리는지 궁금할 정도였습니다. 거의 굶다시피 하면서도 말씀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1982년 영동 지하교회와 테멘 소극장을 교회로 사용하던 시절의 정명석 목사의 모습, 나무 합판으로 직접 단상을 만들 정도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선교회의 초석이 세워졌다
1982년 영동 지하교회와 테멘 소극장을 교회로 사용하던 시절의 정명석 목사의 모습, 나무 합판으로 직접 단상을 만들 정도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선교회의 초석이 세워졌다

정라미 목사
정명석 목사님은 뼛속까지 검소함이 배어 있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목사님 잠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잠언이 “인생은 얼마나 맛있게 먹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의롭게 사느냐가 문제다”라는 잠언입니다.

항상 물질보다 감사하는 마음이 더 귀하다고 말씀하셨고, 월명동에 와서 예배드리는 교인들에게는 차비나 휴게소에서 쓴 돈도 헌금과 다를 바 없으니 헌금 안 해도 괜찮다고 하시기도 했습니다.

제가 곁에서 본 목사님은 비싼 음식을 드시거나 고급 옷을 사 입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목사님 옷 중 괜찮은 것은 대부분 제자들이 선물한 것이었고, 직접 옷을 사실 때는 남대문 시장 같은 곳에서 저렴한 옷을 여러 번 비교하며 구입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직접 본 사실입니다.

박천권 목사
지금 기준으로 보면 ‘가성비’가 좋은 것을 선호하신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남대문 시장을 지나가다가 신발가게에서 목사님과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구두 한 켤레를 사주셨는데, 가격은 저렴했지만 정말 좋은 신발이었습니다.

백충경 목사
정명석 목사님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사시고 있습니다. 월명동 개발 당시에도 제자들에게만 맡기지 않고 직접 체육복이나 작업복을 입고 끼니를 거르며 일하셨습니다.

현재 자연성전 역시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헌정된 공간이며, 교인들이 언제든 와서 기도하고 예배하고 운동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1980년대 선교회의 초창기 모습을 증언하는 정연화 목사(좌)와 정라미 목사(우)
1980년대 선교회의 초창기 모습을 증언하는 정연화 목사(좌)와 정라미 목사(우)

Q. 정명석 목사가 벤츠를 타고 있는 사진이 공개돼 있습니다. 당시 해당 차량을 이용하게 된 경위는 무엇입니까?

박천권 목사
정명석 목사님께서 벤츠를 타고 다니신 것은 교인들이 선물해 드린 차량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선물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선교회 초창기 각 지역에 교회가 생기면서 정 목사님이 전국 교회를 순회하셔야 했는데, 당시에는 전용 차량이 없어 버스나 기차를 이용해 이동하셨습니다.

정연화 목사
제가 대구에서 첫 목회를 나갔던 시기였는데, 정명석 목사님께서 1985년 5월 16일부터 18일까지 대구 순회를 하셨습니다. 이 사진은 5월 16일 대구 터미널에 도착하셨을 때의 모습이고, 옆의 사진은 순회 중 교인들과 함께한 모습입니다.

또 다른 사진은 5월 18일 순회를 마치고 대구버스터미널에서 교인들이 배웅하던 장면이고, 버스 안에서 헤어지기 아쉬워 저희를 향해 손을 흔드시던 모습도 담겨 있습니다(웃음).

1985년 5월 16~18일 대구를 방문한 정명석 목사와 그를 맞이한 교인들
1985년 5월 16~18일 대구를 방문한 정명석 목사와 그를 맞이한 교인들

박천권 목사
이처럼 버스를 이용해 순회를 다니시다가 가까운 지역 이동을 위해 처음 순회용 차량으로 사용된 것이 봉고였습니다. 서울 근방 캠퍼스 전도나 심방에도 많이 활용하셨습니다. 저도 정 목사님과 봉고차를 타고 관악 초등학교로 축구를 하러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연화 목사
저도 정명석 목사님과 봉고를 여러 번 탔습니다. 목사님은 함께 탄 사람들에게 말씀도 전해 주시고 교육도 해주셨습니다. 깔깔 웃으며 대화도 나눴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어떤 일을 제때 보고하지 못해 일이 커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목사님이 봉고차 안에서 “얘들아, 보고 생활은 책임분담이다. 곧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선교회의 첫 순회용 차량 봉고. 이후 안전성을 우려한 교인들이 정 목사에게 벤츠를 선물했다. 벤츠는 교인들과 정 목사의 추억이 담긴 차량으로 남아있다
선교회의 첫 순회용 차량 봉고. 이후 안전성을 우려한 교인들이 정 목사에게 벤츠를 선물했다. 벤츠는 교인들과 정 목사의 추억이 담긴 차량으로 남아있다

박천권 목사
당시 봉고차를 타고 순회하시던 중 접촉사고나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안전 문제를 걱정한 교회 어른들이 뜻을 모아 차량을 선물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벤츠는 안전성이 높은 차량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정 목사님은 처음에는 벤츠를 선물받는 것을 극구 만류하셨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이 꼭 해드리고 싶다며 강하게 뜻을 모아 결국 선물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부터는 봉고 대신 벤츠를 타고 안전하게 순회하셨습니다.

순회 시에는 목사님은 벤츠를 타고, 저희는 봉고를 타고 뒤따라 이동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Q. 목사님들도 정명석 목사와 함께 벤츠를 이용한 경험이 있으십니까?

백충경 목사
벤츠 조수석에 자주 타봤습니다. 원래는 수행하던 목사님이 주로 타던 자리였는데, 그분이 자리를 비울 때 저희가 많이 탔습니다(웃음).

정연화 목사
저는 정명석 목사님이 벤츠를 혼자 타시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목사님은 혼자 편안하게 이용하기보다는 누구든지 뒤에 태우려고 하셨습니다.

뒷좌석에는 늘 두세 명이 함께 탔고, 법적으로 가능했다면 더 많은 사람을 태우고 싶어 하셨을 것 같습니다. 목사님은 이 차량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여기며 최대한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정라미 목사
벤츠는 정명석 목사님만 이용하던 차량이 아니었습니다. 목사님은 마치 택시처럼 교인들을 태우셨습니다. 지나가다 걸어가는 교인이 보이면 “누구야, 타!”라고 하시곤 했습니다.

벤츠는 항상 교인들과 함께 편하게 이용했던 차량이었습니다. 하도 많이 타서 뒷좌석이 가라앉을 정도였습니다(웃음).

또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정명석 목사님이 벤츠에서 잠을 주무시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뒷좌석 손잡이에 달린 끈을 잡고 계셨고, 이동 중에도 말씀을 전하거나 교인들과 신앙 상담을 하셨습니다. 시간을 허비하거나 쉬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백충경 목사
벤츠는 지금도 월명동에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목사님이 해외 선교에 나가신 이후 방치된 줄 알았는데, 한 분이 잘 관리해 지금까지 보관해 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벤츠는 정명석 목사님과 우리들의 추억이 담긴 차량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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