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섭리人

[인터뷰] ‘월명동 자연성전’ 자원 봉사의 산증인, 성시경 목사

월명동 자연성전과 함께한 35...“교인들, 자부심과 긍지 대단하며 자발적으로 참여
이 성전을 개발하기 위해 그가 얼마나 처절하게 수고했는지 체감할 수 있어

충남 금산군 진산면에 위치한 월명동 자연성전에는 평일에도 전국 각지에서 환경 미화 봉사를 위해 찾아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수려한 나무와 웅장한 바위가 어우러진 이곳에서 새벽부터 먼 길을 달려와 운동장의 잔돌을 주워내고 화초와 나무에 물을 주며 구슬땀을 흘리는 사람들. 과연 이들의 마음을 이끄는 힘은 무엇일까요?

대전의 기독교복음선교회 소속 교회에서 부서 교역자로 사역 중인 성시경 목사는 대학 시절부터 월명동 자원봉사에 참여하며 35년이라는 오랜 시간 월명동과 함께해왔습니다. 지금도 월 7~8회 꾸준히 월명동 자연성전 잔디 관리를 포함한 자원봉사를 이어가고 있는 성시경 목사에게 이는 단순한 직분상의 책임감을 넘어선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그의 삶을 변화시킨 월명동 자원봉사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월명동 자연성전의 변화 과정에 함께 해온 성시경 목사, 그는 오랜 세월 자원봉사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풀어놓았다.
월명동 자연성전의 변화 과정에 함께 해온 성시경 목사, 그는 오랜 세월 자원봉사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풀어놓았다.

 

기독교복음선교회에서 신앙생활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1988년 중학생 시절, 누나의 권유로 처음 교회에 발을 들였습니다. 당시에는 각 교회의 교역자들이 전해주는 말씀을 들으며 신앙을 키웠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대전 지역을 순회 방문 중이던 정명석 목사님을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신앙을 통해 개인적으로 어떤 변화를 경험했는지 궁금합니다.

신앙을 갖기 전에는 인생의 목표나 방향이 모호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접하며 제가 가야 할 길과 목적을 명확히 찾게 되었고,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소극적이었던 성격이 적극적으로 바뀌면서 삶의 궤도가 완전히 달라졌죠. 교역자가 되겠다는 꿈도 고등학교 시절 자연스럽게 싹텄습니다.


월명동을 처음 방문했을 때 기억은 어떤가요?

중고등부 여름 수련회 때 처음 방문했습니다. 당시에는 정명석 목사님이 기도하던 장소들을 둘러보고, 목사님의 생가인 빨간 함석집에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월명동은 지금처럼 정돈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약수터도 제대로 된 시설 없이 작은 물구덩이에서 물을 퍼 올릴 정도였고, 비포장 도로에서 한참을 걸어 들어와야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월명동 자연성전 자원봉사는 어떻게 하게 됐나요?

대학 시절, 대전 지역 교회 식구들과 함께 뜻을 모아 처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운동장 터를 넓히는 작업과 기도굴로 향하는 길의 잡목을 제거하는 일 등을 도왔습니다. 전문적인 기술이 없어도 누구나 힘을 보탤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며 경험을 쌓아나갔죠.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 경험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다릿골 기도굴 입구를 보수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흘러내린 토사와 잡풀을 걷어내며 입구를 복구하는 일을 진행했었습니다. 다릿골 기도굴은 정명석 목사님이 젊은 시절 하나님과 예수님을 애타게 찾으며 기도했던 곳입니다. 그 현장에서 땀을 흘리니, 하늘과 인류를 향한 사랑으로 기도하며 진리의 말씀을 받아낸 정명석 목사님의 심정이 더욱 깊이 체감됐죠.

삼위의 구상과 사람의 실천으로 개발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변화된 월명동 자연성전
삼위의 구상과 사람의 실천으로 개발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변화된 월명동 자연성전

 

과거와 비교해 최근 월명동 봉사활동의 분위기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개발 단계였던 과거에는 이곳의 진정한 가치를 미처 몰라보는 이들이 많았고 참여도 적었습니다. 하지만 개발이 완공된 현재는 교인들의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합니다. 말씀을 통해 월명동의 가치를 깊이 인식하게 되면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도 확산되었죠.

 

월명동 초기 개발 단계를 목격하셨을텐데 인상에 깊이 남은 사연이 있나요? 

어느 늦가을 비 내리는 현장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궂은 날씨에도 정명석 목사님은 제자들과 함께 현장을 누비며 직접 몸을 아끼지 않고 작업하고 계셨죠. 작은 부분 하나를 바로잡는 데도 몇 시간이 걸릴 만큼 고되고 정밀한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때 정 목사님께서 “똑같은 말씀을 듣고 역사를 따라가더라도, 그 가치를 얼마나 깊이 깨닫느냐에 따라 신앙의 깊이가 달라지고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연성전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 지극한 공을 들이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세우는 과정에 얼마나 지극한 정성이 필요한지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공들여 추진하던 작업도 뜻대로 되지 않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정명석 목사님의 심정은 어떠셨을까요? 그토록 공을 들인 결과물이 무너졌을 때 느끼셨을 부담과 좌절은 상상하기조차 힘듭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조건 행한다'는 목사님의 철학과 실천력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월명동 자연성전의 잔디를 관리하며 하나님께 사랑으로 영광을 돌리는 성시경 목사

 

지금까지 꾸준히 월명동 봉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하나님께서 저를 이 귀한 구원 역사에 불러주셨다는 감사함이 앞섭니다. 저 자신부터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으로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또한 선교회 지도자로서 먼저 부름을 받은 만큼,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현장에서 뛰는 모습을 보며 자극을 받아 동참하는 교인들을 볼 때 보람을 느낍니다.


오랫동안 월명동에서 봉사해온 분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을까요?

한마디로 신앙의 뼈대가 단단합니다. 정명석 목사님이 삼위와 예수님의 구상에 따라 이 성전을 개발하기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수고했는지 현장에서 체감하기 때문입니다. "말씀 한 구절도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발로 뛰고 행하며 얻으신 것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신앙의 뿌리가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덤으로 건강이 좋아지고 삶에 활력이 생기는 등 외적인 축복도 빼놓을 수 없지요.


봉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개인의 신앙에 손해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신앙의 본질은 '체험'입니다. 관념적으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월명동 봉사활동은 정명석 목사님이 어떤 심정으로 이 역사를 펼치셨는지, 하나님을 어떻게 만났는지 그 발자취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줍니다. 단순히 예배만 드리는 것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신앙의 실체를 깨닫게 됩니다.

성시경 목사는 월명동 자연성전의 봉사활동이 가져오는 변화를 체험했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을 통해 신앙을 회복하는 경우도 있나요?

네, 그런 사례를 여러 차례 보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신앙이 침체되었던 분이 제가 월명동에서 기도하며 찍은 사진을 보고 다시 신앙을 회복한 사례도 있었지요. 
정명석 목사님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거나 의심했던 사람들도 월명동 자연성전 현장에서 정 목사님이 직접 꽃을 심고 나무를 전지하며 누구보다 앞장서서 땀 흘려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편견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현장에서의 체험은 관념적인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월명동 자연성전은 목사님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습니까?

하늘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통로이자 기회의 장소입니다. 더 많은 분이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귀한 체험을 놓치지 않으셨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처음 방문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월명동 자연성전의 외적인 아름다움 너머를 보셨으면 합니다. 이곳을 설립하신 분의 신앙과 애끓는 마음, 그리고 이곳에 담긴 말씀의 깊이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그 내면의 가치를 이해하는 순간, 여러분의 시선과 삶도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