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해석’ 2,000년의 난제… ‘문자’를 넘어 ‘비유와 상징’에서 답을 찾다

작년 11월 교황청이 “구세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라는 요지의 새 교령을 발표하며 성모 마리아의 역할을 ‘공동 구세주’가 아닌 ‘조력자’로 명확히 규정했습니다. 이는 가톨릭 내부에서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신학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행보로 풀이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입장이 개신교가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고수해 온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세주’라는 원칙과 궤를 같이한다는 사실입니다. 이후 1999년 10월 31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가톨릭과 루터교가 구원론에 대한 논쟁을 종식하는 선언에 공식 서명하면서 신·구교가 482년 만에 화해의 전기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구약을 공유하는 유대교는 여전히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똑같은 성경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예수님의 메시아성과 구원론에 대해 각기 다른 해석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독교 신앙의 근간, ‘예언 성취’를 통한 메시아 증거
기독교가 2,00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 속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해 온 핵심 근거는 바로 ‘성경 예언의 성취’에 있습니다. 구약 성경 곳곳에는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기록되어 있으며, 기독교는 이를 예수의 삶과 사역을 통해 증명해 왔습니다.
- 평화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 [이사야 9:6]은 메시아가 한 아기로 태어나 ‘평화의 왕’이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는 초라한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예수의 모습과 연결됩니다.
- 고난과 대속의 길: [이사야 52~53장]에 기록된 “멸시를 받고 고난을 당하며 자기 백성의 죄를 짊어질 것”이라는 예언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겪으신 고초와 죽음을 통해 완벽히 일치함을 보여줍니다.
- 겸손한 왕의 표징: 예루살렘 입성 당시 화려한 병거가 아닌 나귀를 타신 장면 역시, 성경이 예고한 ‘겸손한 왕’으로서의 메시아적 표징으로 해석됩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예수님이 구약의 메시아 예언을 ‘영적 관점’에서 온전히 완성했다고 이해하고, 2천년 동안 예수님을 약속된 메시아로 고백해왔습니다.

‘문자’에 갇힌 해석이 만들어낸 오해와 한계
반면 유대교는 구약의 예언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강림하면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즉각 해방시키고, 과거 다윗 왕국의 영광을 재건할 것이라는 '정치적·민족적 구원'을 강력히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같은 외적인 혁명보다는 인간의 근본적인 영적 속죄와 진정한 회개를 통한 '영적 구원'의 가치를 무엇보다 강조하셨습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현실적인 기대치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영적 세계관 사이에는 너무나 큰 간극이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로 인해, 당시 많은 유대인은 예수를 약속된 메시아로 인정하지 못하고 이단적 선지자로 치부하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유대교는 메시아가 오면 이뤄져야 할 예언 네 가지가 예수 시대에 성취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 불로 세상을 심판하고 [말라기 4:1] , [이사야 66:15~16],
△ 구름을 타고 강림하며 [다니엘 7:13],
△ 죽은 자들이 육신으로 부활하고 [이사야 26:19], [에스겔 37:12],
△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노는 실제 이상세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사야 11:6~9]
사실 이러한 ‘문자적 해석’은 기존 기독교에도 난감한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 2,000년이 지났음에도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고, 육신이 죽지 않고 영생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단순히 ‘예수님의 재림 때 이루어질 일’로 미루어 버린다면, 역설적으로 “초림 예수님은 예언을 다 이루지 못한 미완의 메시아”라는 논리에 빠지게 됩니다.

기독교복음선교회 ‘30개론’, 메시아 예언의 성취를 입증하다
저희 기독교복음선교회(세칭 JMS, Jesus Morning Star)는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의 이러한 신학적 간극이 ‘성경 해석 방법’의 문제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성경은 ‘비유와 상징’, 시대적 시각과 영적 개념이 얽혀있기에 이를 온전히 고려해야 합니다.
선교회의 핵심 교리인 ‘30개론’에 따르면, 구약의 예언은 이미 2,000년 전 예수님을 통해 완벽하게 성취되었습니다.
- 불 심판은 ‘말씀의 심판’: [베드로후서 3:7], [요한복음 12:48]의 말씀처럼, 심판의 도구는 실제 불이 아닌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복음을 통해 사람들의 완악한 마음을 녹이고 회심시킨 역사가 곧 예언된 불 심판의 실체입니다.
- 구름은 ‘깨끗하게 변화된 성도’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구름은 하나님을 따르는 정결한 무리를 비유합니다 [에스겔 38:9], [히브리서 12:1]. 즉,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이 메시아 강림의 참뜻입니다.
- 부활은 ‘영적인 삶의 변화’입니다: [요한복음 6:63]에서 예수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고 하셨습니다. 부활은 썩어질 육신이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망권에 있던 영이 말씀으로 살아나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삶의 전환을 뜻합니다.
- 이상세계는 ‘상징적 공동체’입니다: 이사야서의 동물 천국 비유는 실제 동물들의 약육강식 질서를 두고 예언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12지파가 하나로 화합되는 것,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화합하는 평화로운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성경의 법칙으로 본 재림의 소망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보면 메시아 예언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지만, 비유와 상징 속에 담긴 영적 의미를 깨달으면 예수님은 이미 모든 예언을 완성하신 진정한 메시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해석의 법칙은 오늘날 우리가 기다리는 ‘재림’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공중에서 내려오시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재림하시어 이 시대에 합당한 사명자를 통해 다시 한번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본 선교회는 앞으로도 성경의 깊은 진리를 올바르게 전하며, 이 시대에 예언이 어떻게 실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밝히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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