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어떻게 읽어야 제대로 보일까
많은 사람들이 성경 구절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이는 대부분 문자 그대로 읽고 해석하여,
말씀 속 깊은 뜻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글을 읽으려면 한글을 배워야 하고,
미국 드라마를 온전히 즐기려면 영어를 익혀야 하듯,
성경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려면
‘어떻게 읽고 깨달아야 하는지’를 먼저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참뜻을 깨닫는 첫걸음입니다.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목사는 성경에 기반하여
이치에 합당하게 알도록 해 줍니다.
성경에 기반한 정 목사의 가르침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게 됩니다.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씀을 듣고
잃었던 신앙을 찾았다고 고백합니다.
성경, 시대와 비유의 맥락 속에서 읽어야
마태복음 22:29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예수님은 성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오해가 생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오랜 세월 구전되었다가
기원전 15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성경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기는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보다 아주 예전에 쓰여졌다는 것입니다.
한국 같은 작은 나라 안에서도 세대가 다르면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백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을 읽어 보면
백정들이 임꺽정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현대는 남자들끼리 언니라고 부르면 성정체성을 의심받겠지만
일제강점기 까지만 해도 '언니'라는 표현은
나이 많은 사람을 친근하게 부르는 언어였습니다.
즉, 소설 하나를 읽을 때도 그 소설이 쓰여진 시대상을
알고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지 알아야 제대로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3: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
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사도 바울 선생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거울은 매우 선명하고 깨끗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왜 희미하다고 했을까요?
그가 살던 2,000년 전에는 청동거울을 주로 사용하던 때였습니다.
지금같은 청동연마술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이 쓰는 청동거울은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입장을 이해하고 읽는 다면
왜 사도 바울이 그런 표현을 썼는지 이해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생각하지 않고 읽는다면
"왜 바울 선생이 희미하다고 했을까" 라고 고민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구약 여호수아서에는 ‘태양이 멈췄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호수아 10:12~14 (개역개정)
12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13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태양이 멈추고 달이 멈추기를 중지하지 아니하였으니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하지 아니하였느냐14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이 성구는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춘 기도로 매우 유명합니다.
이 성구를 그대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정말 태양이 멈췄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중세시대에도 이 성구를 근거로 천동설을 주장했습니다.
갈릴레오가 남긴 유명한 말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여기서 유례하죠.
하지만 지금 우리는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태양은 언제나 멈춰 있습니다.
이제 천동설은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기록이 잘못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살던 약 3,400년 전,
사람들은 태양이 움직인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태양이 멈춰달라고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성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아모리 족속과
전쟁 중이었습니다.
외지에서 온 여호수아는 태양이 져서 날이 어두워질 경우
그 땅의 지형을 잘 알고 있는 아모리족속과의 전쟁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가 눈 앞에 보였던
여호수아는 시간이 조금만 더 있으면 완승을 거둘 수 있기에
하나님께 "시간을 더 달라"고 간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간절히 원한 것은 전쟁의 승리였습니다.
여호수아 10:11 (개역개정)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
실제로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우박이 떨어져
전쟁이 빨리 끝날 수 있었습니다.
이 상황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을 오해한 것입니다.
이러한 오해로 중세시대는 천동설을 강력하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치와 순리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시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이치를 깨지 않으십니다.
단순한 기적과 표적만을 쫒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고 제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비유와 문학의 하나님을 이해해야
요한계시록 22: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요한계시록은 밧모섬에 유배된 요한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일어날
일들에 대해 받은 예언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이 성구에는 특이하게 '개’에 대한 예언이 나옵니다.
이걸 문자 그대로 본다면 개는 절대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왜 개만 꼭 찍어서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했을까요?
개가 어떤 잘못을 했길래 개가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했을까요?
에스겔 20:49절에는
하나님은 비유로 말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34~35
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35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예수께서도 비유로 말씀하신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이해할 때는 비유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를 비유로 본다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개는 개와 같은 사람을
두고 말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는 자신이 먹은 것을 토한 뒤 다시 먹는 습성이 있습니다.
잘못된 일을 한 것을 깨닫고 회개한 뒤
옛습성을 다시 행하는 자들을
개와 같은 자라고 표현했다면 이치에 합당합니다.
열왕기상에도 이와 유사한 말씀이 나옵니다.( 17장 1~17절)
앨리야 선지자는 우상을 섬긴 아합왕에게 가뭄이 올 것을 경고하며
그릿시냇가에 머뭅니다. 온 나라에 가뭄과 기근이 듭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할 때 까마귀가 아침에도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물어다 주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구절을 그대로 믿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며
전지전능하심의 표적이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시대 떡과 고기를 까마귀가 물어다 주었다면
왜 지금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여전히 기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예수님께는 왜 까마귀가 떡과 고기를 가져다 주지 않을까요?
당시 이스라엘 시대상을 살펴 보았을 때
바알과 아세라를 우상으로 섬기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누구보다 더 하나님을 모시고 섬겨야 할 이스라엘 왕이
오히려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선지자를 핍박했기 때문에
엘리야는 산 속에 숨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기근과 가뭄이 심해 모든 백성이 고통받았는데
까마귀들은 어디서 떡과 고기가 생겼을 까요?
이는 결국 엘리야에게 떡과 고기를 가져다 준 까마귀들은
우상숭배자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뭄과 기근을 해결해 주기를 바알롸 아세라 목상에게
기도한 뒤 남은 재물을 엘리야 선지자가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스겔서 18:4절에는 죄를 지은 영혼은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상에게 제사를 지낸 자들은 하나님이나 엘리야의 눈에는
죽은 자, 까마귀처럼 보였을 겁니다.
살아 있는 자가 아니라 죽음을 상징하는 까마귀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던 자들이 정성껏 자신의 신을 위해
예물을 준비하고 제사 드렸지만, 결국 그들이 행한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야를 위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이치에 합당하며 지혜로우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영과 육을 구분해야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영생과 구원 부활을 얻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육신은 영원히 살 수 있을까요?
성경을 오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성경에 있는 말씀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9:60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얘수님께서는 죽은자로 죽은 자를 장사하라고 하십니다.
상식적으로 죽은 자가 어떻게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낼까요?
이 말씀에 앞에 나오는 죽은 자는 영적으로 죽은 자를 뜻하고
뒤에 있는 죽은 자는 육이 죽은 자를 뜻합니다.
위에 언급했듯이 에스겔서에도 죄를 지은 영혼은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말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아담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 뒤 930살까지 자녀를 낳고 살았습니다.
처음에 아담은 하나님의 축복속에서 에덴동산에서 살았습니다.
선악과를 취한 뒤 저주를 받아 에덴에서 쫒겨났고, 죄의 고통을 받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을 영적으로 죽은 자처럼 대하신 것입니다.
즉, 영적으로 죽은 자로 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시는 영생 또한 육적인 영생이 아닌
영적인 영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생이란 유일하신 하나님이 시대 보낸 잘 믿고 그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믿고 섬기며 성령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 사람을 통한 역사
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지금까지 사람 앞에 직접 나타나신 적이 없습니다,
아담부터 지금까지 6,000년 동안 육을 가진 자를 통해
말씀과 뜻을 전하셨고,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시거나 음성을 들려 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이, 우연히 마주한 글이나 영상이
여러분을 하나님께 인도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권유를 받으셨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꼭 깨닫기 바랍니다.
아담을 죽게한 선악과는 어떤 과일일까요?
노아가 겪은 홍수심판은 진짜 있었을까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불을 던진다는데 진짜일까요?
성경은 2024년 기준 740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1815년 이후 50억 부 이상이 인쇄 배포된 책입니다.
매 년 1억부 이상이 새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에 대한 궁금증이나
풀리지 않았던 의문,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
언제든지 선교회에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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