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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걸어온 길

천주교-개신교 482년 갈등의 종식,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

한 예수를 섬겨온 두 교회, 갈등의 시작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루터는 면죄부 판매에 분노하며,

비텐베르크 성단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었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신교와 구교간의 긴 전쟁의 시발점이 된 날입니다.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천주교)의 교권은 부패했고,

성직자들은 교리 해석을 독점하며 면죄부를 팔아

성베드로 성전을 짓기 위한 재정을 보충했습니다.

당시 성경은 일반인들은 읽을 수 없는 어려운 라틴어로 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을 읽지 못하는 일반인들은 그저 성직자들이 하는 말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전 유럽에 큰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당시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촉망받는 인재였습니다.

1512년 젊은 나이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성경학 교수로 재직중이었습니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된 성경원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설교 능력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어, 미래를 이끌어갈 신앙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루터는 중세 카톨릭 교회에 대한 반기를 들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닌 

개혁을 원했습니다. 분열이 아닌 개혁을 통해 교회가 변화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마서 1:17)는 말씀을

근거로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을 외쳤습니다.

 

중세교회는 이를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레오 10세는 1520년 6월 교서(Exsurge Domine, “일어나소서 주여”)를 발표하며 

반박문의 철회를 명했습니다. 루터가 이를 거부하고 철회 교서를 공개적으로 불태우자

1521년 1월 3일 교황은 파문 교서(Decet Romanum Pontificem) 를 내렸습니다. 

 

결국 중세교회와 루터는 격렬히 대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개신교(Protestantism)가 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 진리의 외침은 교회의 개혁으로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유럽 대륙을 수 세기 동안 피로 물들이는 종교전쟁의 서막이 되었습니다.

 

 

Deus vult!(하나님이 원하신다) 482년간 이어진 전쟁 

 

 

개신교가 확산되자 로마 교황청은 이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정치·군사적 탄압에 나섰습니다.

이에 반발하여 유럽 각지에서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크고 작은 충돌이

이어졌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위그노 전쟁과 30년 전쟁입니다.


위그노 전쟁(15621598)은 프랑스에서 벌어진 가톨릭과 칼뱅주의 개신교 신도(위그노) 간

유혈 충돌로, 36년 동안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30년 전쟁(16181648)은 신성로마제국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종교·정치 전쟁으로,

인구의 3분의 1이 감소할 정도의 대재앙이었습니다.

 

그 이외에도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지에서도 왕권과 종교가 얽힌 내전과 탄압이 이어졌고,

청교도들은 종교적 이유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에 새로운 식민지를 세워야 했습니다.

 

500년 가까이 천주교와 개신교는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믿으면서도

교회 제도, 예배 방식, 구원론 해석의 차이를 이유로

서로를 “이단”이라 규정하며 무고한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이루어진 역사적 화해(1999년)

 

1999년 10월 31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교황청 일치위원회 위원장 에드워드 카시디 추기경과 루터교 세계연맹의 크리스티언 크라우저 감독이

‘구원론’에 대한 논쟁을 종식하는 선언에 공식 서명했습니다.

 

20세기의 끝자락이던 1999년 10월 31일은 

루터의 종교개혁 반박문 발표 482주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 날 아우크스부르크 성 안나 교회에서 로마 가톨릭과 루터교(개신교) 간

역사적인 화해 선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당시 교황청 일치위원회 위원장 에드워드 카시디 추기경과

루터교 세계연맹 대표 크리스티언 크라우저 감독은

공동으로 ‘칭의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Joint Declaration o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에 서명하며,

다음과 같이 천명했습니다. 

 

우리는 같은 주 예수를 믿으며,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양측의 구원에 대한 오랜 논쟁이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당시 전 세계 20여 개국의 성직자와 신자 700여 명이 이 자리에 모였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기독교 통합의 초석을 놓은 것”이라며 크게 환영했습니다.

 

그 이후 유럽 대륙에는 복음의 꽃이 다시 피었습니다.

유럽 전역에서는 ‘에큐메니컬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교단 간 교류가 본격화되었고,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도 신·구교 간 연합 성찬식, 연합 기도회, 공동성명이 이어졌습니다.

 

또한 유엔은 2000년을 ‘세계 평화의 문화 해(Year of Culture of Peace)’로

지정하고 종교 간 평화와 관용의 시대를 선포했습니다.

 

이에 따라 종교는 전쟁의 원인이 아니라 평화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국제사회에 확산되었습니다.

 

482년 만의 화해,
예수와 동행한 한 사람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이 놀라운 화해의 이면에는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목사는 1999년 8월 해외 선교를 위해 유럽에 도착한 직후,

위그노 전쟁과 30년 전쟁 등 종교전쟁의 피맺힌 유산이 여전히

유럽인의 정서에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천주교와 개신교는 구원이 다르다”, “서로 이단이다”라는

단정이 팽배하여 상대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유럽 땅에서 선교는 멈췄고, 신앙도 형식화되어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 정 목사는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신데,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

 

위와 같은 제목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천주교-개신교의 구원은 같다'
밀라노 대성당에서 얻은 깨달음 

 

이탈리아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 앞에서. 정명석 목사는 지난 1999년 9월 이곳에서 천주교 신부들과 대화하며, 천주교-개신교 간의 뿌리가 깊은 오해를 확인하고 회개했다. 40일 만인 1999년 10월 31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정명석 목사의 발걸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이탈리아 밀라노로 향해 구원에 관한 책을 집필했습니다.  

그는 구원에 관한 책을 집필하던 중,

천주교의 구원에 대해서도 확인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에 천주교와 개신교가 서로 오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종교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9월 예배를 마친 후 예정에 없던 두오모 대성당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고해성사 중인 한 신부와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시아에서 온 목회자로 2만 명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주교 신부들을 만나 직접 물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천주교의 구원은 과연 개신교와 다른 것입니까?”

 

신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입니다.

고해성사는 형식일 뿐, 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해집니다.”

 

또 다른 신부 역시 동일한 답을 주었습니다.

 

이에 정명석 목사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다는 점에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구원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게 되었습니다. 

 

천주교 신부들과 대화하며 

천주교와 개신교간의 뿌리깊은 오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확인해 보니 두 종교는 같은 하나님과 같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종교 제도에 대한 생각과 주장이 서로 달라

500년 가까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해왔던 것이었습니다.

정 목사는 두 종교간 오랜 세월 이어진 오해를 확인한 뒤 이들을 위해 회개하게 됩니다.

 

40일 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일어난 기적 

 

정명석 목사가 오해를 깨닫고 기도한 40일 뒤 10월 31일 주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성 안나 교회에서 전 세계 20여 개국 대표가 모인 가운데,

교황청과 루터교는 구원론에 대한 논쟁을 종식하는 역사적인 화해를 선언했습니다.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킨 지 482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 사명자가 간구했던 그 기도가 하늘에 닿은 순간이었습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화해는 우연이었을까요?

구약성경 이사야 11장에는

“그날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논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종교도, 민족도, 세계도 평화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정명석 목사는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시대와 신시대 종교가 하나 됨을 너무 좋아하셨다.
예수님 믿는 자들끼리 싸우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느냐.
이를 풀었으니 기쁨이었다.


해외 선교길에 나선 정명석 목사는 유럽 각 지역을 다니면서 세계의 젊은이들이 참여하는 세계평화대회를 열어 친선 축구 경기와 문화교류 행사 등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