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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걸어온 길

‘정명석 선생님과 함께한 7년의 기록’, 학자가 만난 정명석 목사의 참모습

 

삶의 근원적인 갈급함 속에서 심령의 곤고함을 느끼던 고() 김종진 교수는 생전 정명석 목사을 만나며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홀로 걸어가는 정 목사의 발자취를 7년간 곁에서 지켜보며 그 생생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안타까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집필했던 이 소중한 기록들은 최근 아내 정혜빛 권사에 의해 「정명석 선생님과 함께한 7년의 기록」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JMS 정명석 목사를 지켜본 학자의 7년간의 기록이 담긴 책, 정명석 선생님과 함께한 7년의 기록
「정명석 선생님과 함께한  7 년의 기록」

학자의 양심으로 마주한시대의 스승

성균관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강단에 섰던 김종진 교수는 유서 깊은 한학자(漢學者) 집안에서 자라 한문학에 정통한 학자였습니다. 그가 기독교에 입문하게 된 것은 처음에는 세례증을 받기 위해서였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일을 계기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진정으로 신앙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정명석 목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결정적 계기는 성균관대학교 출강 중 제자를 전도하기 위해 대화를 하던 중 성경을 2,000번 읽은 분이 계시다는 말을 들으면서 였습니다.


김 교수는 정 목사님의 잠언집 「하늘말 내말」을 접하고 솔로몬의 잠언을 읽는 듯한 깊은 영적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인생은 얼마나 맛있게 먹고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얼마나 의롭게 사느냐가 문제다라는 잠언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그에게하나님 앞에 의로운 삶을 살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본서는 1992년부터 1999년까지 김 교수가 학자이자 제자의 시선으로 기록한 7년의 세월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책머리에서 온전한 성경 해석으로 새로운 영적 지평을 여신 인생의 참스승을 만났다고 고백하며, 외부의 왜곡된 시선과 달리 30년 넘게 매일 써온 일기 속 사실만을 근거로 정 목사의 실체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중 몇가지 대표적인 일화를 소개합니다.


1. 월명동 자연성전 앞산 돌조경이 비스듬하게 넘어질 듯 보이는 이유

월명동 자연성전은 수십 톤에서 수백 톤이 넘는 돌조경으로 조성되어 신비하고 웅장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명석 목사는 이곳 앞산 돌조경에 대해 설명하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저기 앞산의 돌이 비스듬하게 넘어질 듯 보이는 이유는 정면에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도 잘못된 주관의 시각을 가지고 보면 바로 볼 수 없다. 사람을 바로 보려면 진리로 보아야 한다. 진리를 던져 보면 참 사람인지 거짓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해도 하늘의 의로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늘에서 바라본 바른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깊은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생전의 김종진 교수에게 줄 ‘오직 하나님’ 사인을 하고 있는 정명석 목사.
생전의 김종진 교수에게 줄 ‘오직 하나님’ 사인을 하고 있는 정명석 목사.

2. 돌은 무너졌어도 내 마음은 무너지지 않았다

저자는 정명석 목사가 어떠한 고난이나 어려움이 닥쳐도 굴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월명동 앞산 돌조경을 쌓을 당시, 돌이 다섯 번이나 무너졌음에도 정 목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정성을 들여 쌓은 돌들이 무너졌을 때 모두의 상심이 컸으나, 정 목사님은 주일 말씀을 통해 오히려 교인들을 위로했습니다.

당시 정 목사님은 그 비에 무너질 작품이라면 이렇게 미리 무너진 것이 천만 번 잘한 것이다. 만약 사람이 사용하다가 무너졌다면 많은 생명의 위험이 있었을 것인데 하나님이 미리 무너뜨리셨고, 그것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새벽 2시경에 무너진 것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오히려 감사를 고백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돌은 무너졌어도 내 마음은 무너지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순간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신 것에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나는 다시 쌓을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정상(頂上)의 삶은 정상(正常)으로 사는 것실천적인 삶의 강조

정명석 목사는 1994 14일 아침 말씀을 통해 신앙인은 생활이 이상적이어야 하며, 그에 따라 소망이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는 소망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의 순간순간 현실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이상적으로 살아가야 하늘에서도 이상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정상(頂上)의 삶은 정상(正常)으로 사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구원이란 인간성 회복에 있으며, 생활 속에서자기실현이라는 실천적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쳤습니다. 깨달았으면 실천해야 함을 역설하시며, 나는 말보다 실천이다라고 말씀하시는 등 지나치게 신앙에만 치우친 삶을 경계하고 실천적인 면모를 강조하셨습니다.

저자 고(故) 김종진 교수는 1995년 8월 서해안 몽산포 해수욕장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밀물이 멈추는 표적이 일어났다고 기록한다.
고(故) 김종진 교수는 1995년 8월 서해안 몽산포 해수욕장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밀물이 멈추는 표적이 일어났다고 책에 기록한다.


4. 몽산포 해수욕장에서 일어난 서해안 밀물의 표적

1995 8 15, 서해안 태안반도 몽산포 해수욕장에서 광복절 기념예배 후 축구 경기를 할 때였습니다. 오후 6시쯤 밀물이 해변 40미터 전방까지 밀려와 경기를 중단해야 할 상황이 되자, 정명석 목사는 손을 높이 올리고 짧은 시간 기도했습니다. 당시 김 교수는 경기를 이길 힘과 지혜를 구하는 기도라 생각했으나, 사실 정 목사는 배구장 장소가 곧 물에 잠길 것을 알고 더 이상 물이 밀려오지 않도록 기도한 것이었습니다.

음력 백중사리에 해당하여 물이 육지까지 차야 하는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물은 멈추었습니다. 당시 밀물이 멈춘 모습은 촬영차 나와 있던 모 방송사 기자가 직접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정 목사는 하늘은 극적인 상황에서 극적인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물은 곧 들어오고 경기는 더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내가 최선을 다해서 극적인 승리를 할 테니 저 바닷물을 멈추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라고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극적인 역사도 인간이 극적인 조건을 쌓아야 일어난다는 것을 깨우쳐 준 사건이었습니다.

정명석 목사는 1994년 6월 북핵문제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제자들과 함께 구국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5. 누구보다 국가를 사랑하는 애국자, 정명석 목사

정명석 목사는은 대한민국에 큰 환난과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1994 6월 북핵 문제로 전쟁 위기설이 난무할 때도 제자들과 함께 구국기도회를 열고, 전쟁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라며 기도회를 이끄셨습니다. 당시 참여했던 모 회장은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며  “대한민국이 잘 된 것은 국운이 돌아와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라를 위해 기도한 젊은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깊은 소회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 김종진 교수가 남긴 7년의 기록은 끝이 났지만, 오늘날에도 수많은 제자가 정명석 목사님의 삶을 지켜보며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진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