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걸어온 길 썸네일형 리스트형 ‘정명석 선생님과 함께한 7년의 기록’, 학자가 만난 정명석 목사의 참모습 삶의 근원적인 갈급함 속에서 심령의 곤고함을 느끼던 고(故) 김종진 교수는 생전 정명석 목사을 만나며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홀로 걸어가는 정 목사의 발자취를 7년간 곁에서 지켜보며 그 생생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안타까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집필했던 이 소중한 기록들은 최근 아내 정혜빛 권사에 의해 「정명석 선생님과 함께한 7년의 기록」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학자의 양심으로 마주한 ‘시대의 스승’성균관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강단에 섰던 김종진 교수는 유서 깊은 한학자(漢學者) 집안에서 자라 한문학에 정통한 학자였습니다. 그가 기독교에 입문하게 된 것은 처음에는 세례증을 받기 위해서였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일을.. 더보기 정명석 목사, 참혹한 전쟁터로 다시 돌아간 이유 2차 파월을 결심하다 귀국한 정 병장은 전쟁의 참혹함을 잊지 못했습니다. 그는 생명을 잃어 버리는 전쟁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베트남 언어를 배워 통역해 주면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남들은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아 하던 전쟁터. 정 병장은 스스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의 파병은 단순한 군 복무를 넘어, 생명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가 속한 3중대는 연간 200회 이상, 총 600회가 넘는 실전에 투입되었습니다. 한국군 전체 기록을 보아도 손꼽히는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베트남전 최대 규모 작전인 ‘오작교 작전’과 ‘홍길동 작전’에 기동타격대로 투입되었지만, 전사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전쟁 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정 병.. 더보기 정명석 목사, 전쟁 중에도 실천한 '사랑과 평화' 전쟁은 잔인했습니다. 총칼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살아남은 자들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었던 전쟁의 한복판. 그곳에는 '죽이지 않고 살리는 전쟁'을 실천한 사람, 정명석 병장이 있었습니다. 1960년대 베트남은 프랑스 강점기에서 벗어난 뒤 공산화와 외세 개입으로 세 차례 전쟁을 겪었습니다. 그중 제2차 베트남 전쟁(1964~1973)은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자유 진영이 남베트남을 지원해 공산 세력과 맞선 국제전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한국군 창군 이래 첫 해외 파병 사례로, 약 32만 5천 명이 참전했고 전사자만 5천여 명에 달했습니다. 1차 파병과 기적 같은 생존 정명석 병장은 1966년 2월 23일 입대한 후, 백마부대에 배치되었습니다. 부대에 .. 더보기 우리는 ‘진짜 생존자’… 세상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믿음을 지켜온 이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와 그 후속작 〈나는 생존자다>는 기독교복음선교회(세칭 JMS, Jesus Morning Star)와 정명석 목사를 향해 거친 프레임을 씌웠습니다. 그러나 외부의 비난과 온갖 낙인 속에서도, 선교회 교인들은 신앙을 지키며 “우리가 바로 진짜 생존자”라고 말합니다.이들은 왜 선교회를 떠나지 않았을까요?하나님을 다시 찾게 해 준 순간, 인생이 달라졌습니다김윤철(가명, 52) 씨는 19살, 삶의 무게에 짓눌려 희망을 잃던 시기에 선교회를 만났습니다. 정명석 목사의 말씀을 들으며 그는 잊고 있던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는 그 순간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하나님, 성령님, 예수님과의 새로운 만남은 제 인생을 몸과 마음, 영혼까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바꿔놓았.. 더보기 천주교-개신교 482년 갈등의 종식,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 ■ 한 예수를 섬겨온 천주교와 개신교, 갈등의 시작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루터는 면죄부 판매에 분노하며, 비텐베르크 성단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었습니다. 신교와 구교간의 긴 전쟁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천주교)의 교권은 부패했고, 성직자들은 교리 해석을 독점하며 면죄부를 팔아 성베드로 성전을 짓기 위한 재정을 보충했습니다. 당시 성경은 일반인들은 읽을 수 없는 어려운 라틴어로 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을 읽지 못하는 일반인들은 그저 성직자들이 하는 말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전 유럽에 큰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당시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촉망받는 인재였습니다. 1512년 젊은 나이에 신학박사 .. 더보기 하나님의 구상을 실현하다, 월명동 자연성전 (下) ■ 하나님의 구상을 실현하다, 월명동 자연성전기독교복음선교회의 상징인 월명동 자연성전은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하나님의 구상과 정명석 목사의 실천이 40년에 걸쳐 구현된 영적·예술적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정명석 목사는 1980년대 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월명동 옛 집터와 흙벽돌집을 35만 원에 구입하며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2021년까지 40여 년간 이곳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꾸고 개발했습니다. 정 목사는 하나님이 직접 돕고 성령과 예수님이 함께하신 것은 물론, 따르는 자들이 함께 했지만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모든 것은 때가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구약에서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4,000년, 신약의 복음이 전해진 시간 또한 2,000년에 걸쳐 .. 더보기 하나님의 구상으로 만들어진 월명동 자연성전 (上) ■ '시대 진리 말씀'을 실체로, '월명동 자연성전'기독교복음선교회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두 가지를 꼽는다면, 바로 정명석 목사가 전하는 시대 진리의 말씀과 ‘오직 주 하나님’ 사상이 깃든 월명동 자연성전일 것입니다.정명석 목사는 현재 법정에서 중형을 선고받았음에도, 선교회 교인들은 흔들림 없이 신앙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이는 지난 반세기 동안 정 목사가 삶으로 증명해 온 신앙의 실천을 직접 보고 함께해 온 교인들의 굳건한 믿음 때문입니다.그와 함께 하며 ‘오직 하나님 사랑’의 삶을 보아온 이들은 세상의 판단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녀사냥식 종교재판과 여론재판이 판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명백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나는 말보다 실천이다” 삶으로 증명한 그의 잠언정명석 목사는 20년간의 수.. 더보기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목사, 그의 진실은? “하나님의 뜻 따라 걸어온 역사” 정명석 목사의 삶과 사역, 그리고 진실을 향한 여정기독교복음선교회(세칭 JMS, Jesus Moring Star) 창립자 정명석 목사는 지난 47년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고,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한 신앙과 실천의 삶을 이어왔습니다. 그는 말보다 실천을 앞세우는 신앙의 자세로 수많은 청년과 신자들에게 신앙의 방향성을 제시해왔습니다.신촌에서 시작된 사역… 말씀과 실천의 길1978년 6월, 서울 신촌에서 사역을 시작한 정 목사는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며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설교는 형식적인 교리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변화를 이끄는 실천적 진리를 강조했습니다. 특히 성경을 과학적·이성적으로 해석해내며, 젊은 세대와 지식.. 더보기 이전 1 다음